2024년 4월 22일 서강석 송파구청장이 발의한 ‘서울특별시 송파구 상징물에 관한 조례안’이 더불어민주당 구의원 전원(김정열, 박성희, 조용근, 김호재, 최옥주, 신영재, 배신정, 박종현, 정주리, 김샤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되었다. 핵심 쟁점은 구를 상징하는 꽃으로 왕벚꽃을 지정하고자 하는 점이다. 관상을 위해 도시 곳곳에 심은 벚꽃에 대한 시민들의 선호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구를 상징하는 꽃으로 벚꽃, 특히 왕벚꽃을 삼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왕벚나무가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왕벚나무의 학명은 [푸르노스 에도엔시스 마쓰므라]로 에도, 즉 도쿄의 벚나무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는 [소메이요시노]라 불리는 이 나무의 국명이 바로 왕벚나무이다. 일본에는 현재 공식적인 국화가 없지만, 이 왕벚나무가 바로 일본을 상징하는 나무로 널리 알려져 있다. 2차세계대전 당시 가미카제 자폭용 비행기를 벚꽃으로 은유하기도 했으며, 야스쿠니 신사를 에워싼 나무도 바로 이 왕벚나무이다.
총독부의 기관지였던 매일신보는 1939년 4월 16일자 기사를 통해 1907년 순종을 창덕궁에 가둔 이후 일제가 한국에 머무는 일본인들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일본의 국화인 사쿠라를 내지(일본)에서 갖다 심었다고 밝힌다. 이 사쿠라가 바로 왕벚나무이다. 1910년 일제가 진해를 군항으로 만들면서 도시 미화를 위해 10만 그루를 심은 나무가 바로 이 왕벚나무이다. 현재 벚꽃축제로 알려진 수많은 벚나무 명소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를 통해 탄생했으며, 이 나무들이 모두 바로 이 왕벚나무이다.
해방 후 정부는 일제의 잔재라며 수만 그루의 왕벚나무를 벌목했다. 그러나 1962년 동아일보의 한 신문 사설에 ‘왕벚나무는 우리나라 제주도가 원산지’라는 사실관계가 잘못된 글이 실린 이후 한일국교 정상화와 함께 재일교포와 일본기업들이 대거 기증한 왕벚나무가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전 국토를 뒤덮게 되는데, 그것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했던 꽃이 바로 왕벚나무였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는 3월 30일자 기사에 ‘한국, 제국주의 없는 벚꽃 구해(Wanted in South Korea: Imperialism-Free Cherry Blossoms)’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문화적인 세련미(cultural refinement)를 주기위해 심기 시작한 왕벚나무가 지금까지 한국에 내려왔다” 이 기사에서 가리키는 제국주의 없는 벚꽃은 우리나라 토종인 제주왕벚나무의 꽃이다. 기사에 따르면 왕벚프로젝트 2050이라는 민간단체가 우리 강산을 뒤덮고 있는 제국주의의 잔재인 왕벚나무 대신 제주왕벚나무로 대체하려는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 이에 제주도, 진해시, 영등포구청 등 벚나무 명소들을 보유한 지방자치단체들도 순차적으로 제주왕벚나무로 교체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취임 후 맞이한 첫 번째 광복절, 서강석 송파구청장은 구 청사와 주민센터 외벽에 건국절을 표기해 물의를 빚었다. 이듬해 광복절에는 우리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게 아니라 조선의 왕이 갖다 준 것이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었다. 같은 해 9월에는 친일논란 뉴라이트 이영훈을 공무원 집체교육 강사로 세웠고, 지난 4월 23일에는 급기야 역사왜곡과 이승만 미화로 논란의 중심이 된 영화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을 4.19 혁명일 즈음에 기어이 같은 자리에 세우고 말았다. 할 일 많은 송파구에서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벌이고, 해서는 안 되는 일도 보란 듯이 저지르는 서강석 구청장. 남은 2년이 너무 긴 것 아니냐는 푸념이 예사로이 들리지 않는다.
원래 송파구의 구 꽃은 개나리였다. 개나리의 교체 이유로 구청은 개나리의 ‘개’가 부정적인 어감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대체 누가 개나리 꽃을 보면서 ‘개’라는 말 때문에 부정적이라는 생각을 떠올릴까. 혹 개나리가 본래 일제 치하 순사들을 비하하던 표현이기 때문일까. 그간의 행보를 볼 때, 서강석 송파구청장이 구 상징꽃을 일본을 상징하는 왕벚꽃으로 송파구 상징을 교체하는 걸 대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